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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나는 서툰 사람입니다. 특별해질 수 있다면 불행을 마다하지 않을 야망을 품고서도 마음만은 서툰 그런 사람입니다.

청춘에 찾아온 사랑은 달콤했지만 이내 금방 익숙해지는 내게는 너무 과분했고 입이 마르도록 떨떠름한 떠남과 떠나감의 시간은 좀처럼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나조차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 스스로의 용서를 구하려 혼자 술을 마시며 책을 읽으며 글을 끄적이기도 했습니다.

철없이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가엾게도 마음의 벽을 더듬거리며 사랑을 헤매왔습니다.

그러던 내 가슴을 후벼 판 건 '사회적 죽음'이라는 말 입니다.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들, 누구에게도 공감 받을 수 없다면 그것 또한 죽음이겠지요. 그리고 고민했습니다.

이젠 나를 특별해서 슬프다고 해야 하나요. 특별히 슬프다고 해야 하나요. 말을 껴안고 눈물을 흘린 니체는 정신병자였나요. 그의 남겨진 글을 읽으며 눈물로나마 이해해 보려 노력한 나도 정신병자인가요.

탄생의 축복 앞에 놓인 건 사회적 죽음, 생명의 죽음 중 어떠한 하나가 아닙니다. 대신 수많은 사상, 생명, 존재가 탄생하고 죽기를 반복하는 세상입니다.

죽음에 대한 고민으로  '유영; 남겨진 일렁임'을 계획하면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죽음의 모습과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떠남과 떠나감.jpg

<떠남과 떠나감 >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가장 일관된 모습으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인간은 죽어감이 끝나는 시간까지도 시시각각 감정의 변화를 맞이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수천개의 사유는 두 팔로 고통과 행복을 품어안고 홀연 떠납니다.

 

촬영의도

 

고민을 안고 친구들과 떠나온 곳은 몽골입니다. 고등학교의 삶을 함께한 친구들, 과묵함에 걸맞게 나까지도 매료시킨 철학 세계를 가진 재현, 단 한 분야에서도 뒤쳐지지 않는 걸 평범하다고 여기는 윤호, 유능한 머리와 합리화로 해내지 못할 건 없지만 그저 투정이 많은 제연. 졸업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서로의 고민에 귀와 술잔을 기울인 7일의 시간이었습니다. 

차가운 모래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사막은 형태만 달라졌을 뿐 태양은 여전히 모래 알갱이 하나하나를 뜨거운 빛으로 발가벗기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유는 감정을 품고 빠르게 지나치지만 나라는 사람은 제자리 태양 아래 짙은 그림자를 남깁니다.

 

촬영정보

Nikon FE2 | 40mm | F/8.0| 1/2000s | IS0800 | 2023 | Kodak Portra 800

데커섹시스 I.jpg
데커섹시스 II.jpg

데커섹시스(Decathewis) ; 세상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는 상태.

 

언덕에 올라 누웠다. 광활한 대지와 드높은 하늘, 그사이 오롯이 나만 존재한다. 별들은 나를 바라보며 무심한 어둠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모든 별 그리고 그 별이 품은 생명, 전부 죽음을 향해 흘러간다. 천천히, 세상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는 순간에 가까워진다. 그렇게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별이 스러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촬영의도

삶이 살아감의 시간을 의미하듯 죽음 또한 순간이 아닌 죽어감이 끝나는 시간 자체입니다. 어쩌면 둘은 서로의 일부인 셈입니다.

그리고 삶의 끝이자 죽음의 끝에는 세상에 대한 집착이 전혀 없는 상태. 데커섹시스가 있습니다.

셋째 날 새벽 친구들과 언덕에 올라 누웠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의 삶이 무수히 많은 죽음을, 하나의 죽음이 무수히 많은 삶을 마주했습니다.

삶과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은 순간보다는 연속이 어울리기에 적도의를 이용해 1,500초 동안 별을 쫓으며 은하수 속 수천억 개의 별을 담았습니다.

불안한 나의 모습과는 달리 별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촬영정보

Nikon FE2 | 50mm | F/1.8 | 1500s | IS0200 | 2023 | Kodak Ektachrome E100D

Nikon FE2 | 40mm | F/5.6 | 20s | IS0200 | 2023 | Kodak Ektachrome E100D

작가의 말 

 

1년 전도 지금도 저는 오직 필름 사진만을 찍습니다.

필름보다 더 필름 같은 사진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 AI가 디지털 모조품을 찍어내는 시대, 만들기보다 간직하기 더 어려운 시대 속에서 나는 여전히 필름을 사랑합니다.

 

첫 전시 이후 6개월간 새롭게 시도한 필름 촬영 방식들을 통해 저의 시선과 기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아래 두 작품은 라이트 박스를 이용한 중형 슬라이드 필름 원본 전시와 환등기를 이용한 영상물로 전시장에 오시면 더 생생하게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원본전시.jpg

사진가의 수명 

 

사진가의 수명은 고작 몇초에 지나지 않는다. 

필름을 재장전, 조준, 발사. 

사진에 담긴 작가의 시선은 영원히 포즈를 취한다.

 

촬영정보

PENTAX 67 | 105mm | 2023 | Kodak Ektachrome E100 | 56mm x 70mm

 

주마등(走馬燈)

 

인간은 청춘을 바쳐 행복한 기억을 만들고 남은 삶을 추억하며 살아간다.

마지막 작품에서는 환등기와 슬라이드 필름을 통해 세 도시에서 작가의 기억을 보여줍니다.

호흡이 서서히 느려지며 태엽이 멈춰가는 동안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16장의 이미지를 소개함으로 나는 어떤 추억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은가, 여러분께 반문하며 본 전시의 눈을 감기고자 합니다.

 

촬영정보

Nikon FE2 | 2023 | Kodak Ektachrome E100D, Wittner CHROME 200D | Mongolia, Japan, Hong Kong | 36mm x 24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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